라이프로그


융기된 세 기둥 mυlε

나는 암흑에서 대화를 시작했고 검은 실루엣으로 가려져있던 그 무엇을 처음엔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에 대화는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검은 실루엣의 이상하지 않은 움직임이 슬쩍슬쩍 그 무엇을 보여주기는 했지만 너무나도 짧은 여러 찰나들 이어서 나는 그 순식간들을 까맣게 잊을 수가 있었다

하지만 대화가 길어지면서 분산된 집중력이 칠흑의 대기에 부유하다 어느 한 지점에 다시 응집하기 시작했다 그것들은 점점 빠른 속도로 그 한 지점에 다닥다닥 꽂혔고 집중력이 하나의 결정체가 된 순간 농후한 어둠의 찬란한 발광은 그 무엇의 정체를 드러내줬다 그것은 지나치게 어둡고 무거워 나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웠다 나는 온 몸의 어지러운 피 순환을 진정시킬 능력과 말초신경의 터질 것 같은 진동을 제어할 능력을 잃었고 지탱할 두 다리의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을 방법을 찾지 못했다 정체의 명확한 불분명함과의 대면이 가져다 준 공포감과, 나를 통제할 길에서 갑자기 미아가 된 상실감은 거의 대등했다 그렇게 검은 실루엣을 찢고 나온 실재는 수 분간 내 코앞에 섰다가 다시 검은 실루엣 뒤로 실체를 숨겼다

하지만 나는 실재를 정확하게 기억할 뿐 아니라 검은 실루엣의 꿰맨 실밥 자국 또한 여전히 보고 만질 수 있다 융기된 흔적들이 그 증거이다.





 


































prologue 191







Oikos, 부엌 공방 ιllυm


도처에는 우리가 공포를 느끼게 하는 것들이 널려있다. 하지만 그 공포의대상들을 가려 눈 멀게 하거나 공포자체를 부정한다. 혹은 곳곳의 공간 특수성으로 인해 그것을 직면하더라도그것이 공포인지 알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 공간의 폭력. 정갈한음식으로 포장된 부엌이란 공간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스레기 국밥 시식하기

 

부엌이란 오물과 폭력이 난무하는 공간이다. 요리자의 손을 거쳐 먹히는 것과 버려지는 것이 나누어지고 그 버려지는 것들은 먹히는 것 이상의 양으로 산출된다. 물론 오늘 날에는 재활용되는 것들이 상당하지만 그럼에도 버려지는 가스와 전기, 깨진 유리 등의 엔트로피를 막을 방법이 없고 그것은 폭력에 다름없다.

음식물을 가열함으로써 생성되는 탄화수소, 질소산화물, 황산화물 등 각종 미세먼지와 요리자의 손을 통한 계란껍질의 대장균, 요리자의 타액과 체모 또한 음식물로써 배제된 쓰레기다. 주방에서 요리를 해 본 이들은 금방 이해할 수 있겠지만 요리를 위해 싱크 안에 내리 꽂힌 쓰레기의 양은 어마어마하다. 특히 초대한 손님들의 방문 시간이 가까울수록 주방의 싱크는 전장을 방불케 한다. 그럴 땐 식탁도 싱크의 연장이고 전쟁의 확산이다. 식칼과 식가위, 동물의 피, 끓는 물은 그 자체가 전쟁터이다. 작가의 퍼포먼스 현장에서 반시간동안 생성되었던 습기와 냄새는 전장의 풍경을 보여주었고 작가는 캔버스에 그 흔적을 기록했다.

그 쓰레기 집적물의 공간에서 모든 권력은 요리자에게 집중되어 있다. 가족 구성원들의 모든 개성은 무시되고 획일화된 메뉴의 선택권은 요리자의 구심력으로 중심화 된다. 또한 맛이 어떠하냐라는 질문을 하는 요리자는 감시자이며 '매번 같은 대답'을 듣는 교사자이다. 냉장고를 열면 나와 상관없는 반찬들이 이번 한 주 내내 먹어야 할 내용을 강제로 입 안에 구겨 넣는다. 요리자는 신선도나 청결도와의 관계 여부를 떠나 양념과 식재료를 사용할 수 있는 특권이 있고 자고로 전쟁에서 지식과 정보가 많은 쪽은 승전고를 울린다. 반면 먹는 자는 그저 무력한 수용자일 뿐이요 무지한 포로이다.

이러한 전쟁터에서 독립된 현대인의 부엌은 조금 색다르다. 아내 혹은 어머니가 부엌의 주인이 되어 공간을 점유하던 시절과 빠른 속도로 멀어져, 오늘날 부엌을 생략한 1인 가구가 많다. 그 곳은 작은 거실의 확장이고 간소한 식탁은 편의점의 간이 바(bar)이며 그 곳의 레인지는 커피나 라면을 위한 끓는 물의 에너지원이다. 찬장과 선반에는 조미료와 식기들 대신 간편하게 조리할 수 있는 인스턴트식품으로 채워지고 그것은 냉장고와도 다르지 않다. 골치 아픈 음식물 쓰레기(오물)와 내 집을 침범하는 벌레들(폭력)을 최소화할 수 있는 탁월한 풍경이 아닐 수 없다. 모든 것이 건조 가공되고, 압축되고, 효율화 되고, 규격화 되고, 정렬되고... 무미건조해졌고, 선택의 자율성을 침해 당하고, 취미의 독특성을 잃었으며 정열을 상실했다. 그것은 클론으로서 누워있던 가공 식품이 공장의 기계로부터 스스로의 정체성을 음식이란 개념으로 구체화 하려는 자기기만이자 가식이다. 나는 영양소 충만한 토마토이고 밀이라고 텍스트로 표지 하지만 사실 천편일률적 대량생산의 공산품에 불과하고 그 영양소란 생명을 좀먹는 유령의 에너지이다.

쓰레기의 집적을 방지하고자 했던 현대인의 책략은 정크(junk) 푸드이고, 요리의 집념적 폭군으로부터 해방고자 우리는 참을 수 없는 그 음식의 가식을 씹어 삼키고 있다.

 

 

 

BiHop


자화상(분열) οιl


자화상(분열), 90.5x116.7cm, oil on canvas, 2015




ΒΙΗΟΡ






2015년 3월 12일 mοn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말 수가 줄어서...


, 그래 보이긴 하지만 그것은 결과일 뿐 이유는 아닙니다.


특별한 말이 없어서도, 말을 잃어버려서도 아닙니다.


수다스런 단어들을 버리는 훈련을하는 중입니다.


지나보니 부질없고 쓸모없이 폐기되는것이 많을 뿐 아니라


오히려 제 때의 망각을 방해하는요소들이 참 많더이다.


그리고 더 지나보니 그것들이 다나를 위한 욕망의 덩어리였고


시시때때로 뒤집히는 변덕이 만들어낸 모순의 결합체였습니다.


게다가 존재를 파멸시키는 극악한것이더이다.


하지만 아무리 버려도 잊혀지지 않는순간이 딱 하나 있습니다.


무신경하게 아무런 노력 없이 있으면, 기억에 그 자리를 눌러앉아 차지하고 있고


버리려 노력할 때는, 자리에 일어서 떠올라 더욱 뚜렷하게 해 괴로운 딜레마입니다.


아이가 공포와의 대면을 막으려 주문을외지 않으면 꿈마다 거인이 출몰하고


잊고 싶어서 소원을 기도로 떠올리면밤마다 생각에서 출몰하는 거인 이야기와 같습니다.


더구나 오늘은 며칠 전 꿈이 문득떠올랐습니다.


나는 정당하다라는 판단을 포기할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나를 오만하기는커녕의기소침하게 만들어버렸습니다.


그 나머지는 하나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아마 한참 전 꿈인 것 같아 무슨 내용인지, 나는 어떤 대책을 내었는지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이젠 기나긴 싸움에 축적된 피로도는 비만이 되어 미련한 물질로 한 발짝 움직이지를 않습니다.


수백 번 버리고 버리고 또 버려도약한 소리 한 마디가 간절해 입을 엽니다.


단 하루만이라도 날이 따뜻했으면좋겠습니다.


단 한번만이라도 존재하는 내가 존재했으면좋겠습니다.


 



아이 때 꿈은 거인을 퇴치하는 영웅이아니라


그저 자연스럽고 따뜻한 일개였을것입니다.


단 한번만이라도 그 사람에게 내언어를 이해시키고 싶습니다. 그의 말을 알아듣고 싶습니다.


단 한 순간만이라도 나와 그가 서로의 사람이었으면참 따뜻하겠습니다.







-ΒιΗορ







소리 οιl

 소리, 91x73cm, oil, acrylic and gesso on canvas, 2014




ΒΙΗΟ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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